소방에 ‘열심히’ 만 기대할 수는 없다 … 소방서장 릴레이 제언 <5>

2014.08.18 11:26
임근술 | 광주 서부소방서장

[경향마당] 임근술 광주 서부소방서장

국가직이 되면…. 불을 더 잘 끄기 위해 국가직을 외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해 불을 끄기 때문이다.

First in ! Last out !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은 부족한 장비나 낡은 소방차를 탓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 방수복과 장갑 사이로 스며든 물이 얼어서 관창을 잡은 손이 곱아 펴지지 않아도, 더운 여름날 태양이 내 품는 열기와 화염으로 온몸에 흐른 땀이 방수복을 적실 정도가 돼도…. 그래서 탈진해서 건물을 나오자마자 쓰러져도, 혹은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쓰러지더라도…. 남 탓은 할 수 없다. 그냥 그것을 사명으로 안다.

소방관은 출동 벨이 울리면 20초 이내에 차고를 빠져나간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자동차 예열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평소에 시동점검이라는 것을 하지만 자주 운행하지 않던 차들도 출동할 때는 차에 오르자마자 시동을 켜고 곧바로 출발해야 하니 고장률도 높고 노후화가 빠르다.

임근술 광주 서부소방서장

임근술 광주 서부소방서장

차만 시동을 바로 켜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예열이 없다. 3조 2교대 근무를 하는 소방관들은 출동 벨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차고로 달려간다. 밥을 먹고 있는 중에라도, 휴식하고 있더라도 예외는 없다. 워낙 출동 벨에 민감하게 반응 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령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출동 벨이 울리면 온몸의 근육과 신경들이 바짝 긴장한다. 현장상황은 예측할 수 없다. 어둠, 열기, 유독가스에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들이 출동하는 소방관을 기다린다. 강직된 근육들은 축 늘어진 사람을 들쳐 메고, 건물들을 부수고 들어 올리고 힘을 쓰느라 근골격계 질환 발생도 많다.

3조 2교대로 근무여건이 개선되었지만 필요한 인원이 충당되지 않아 동료가 교육이나 휴가를 갈 때면 대기근무에 들어와야 한다.

한 사람이 두 대의 소방차를 담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 한 대를 포기해도 탑승자는 두 명. 비번이었던 제주의 센터장이 화재발생 문자를 받고 황급히 들어와 지원 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왕왕 발생하곤 한다. 그나마 광주는 여건이 좋은 편이지만 소방관의 충원은 시·도지사가 담당하는 부분이다 보니 지자체의 예산이 부족한 곳은 그 여건이 더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여건에 따라 4조 3교대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직인 경찰의 통계연보를 보면 2012년 경찰은 총 정원 100%인 102,400 여명의 인력이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소방기본법 제8조인 ‘소방력 기준’에 의할 경우 3교대에 필요한 인원은 2만4천 여 명이 충원되어야 완전한 3조 2교대 근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방은 소방인력 신규채용 대신 무리한 관서통합과 인력조정을 했다. 공무원 총정원제에 묶여 증원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승낙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인력 때문에 비번대기나 비상호출로 근무해야 하는 것도 괜찮다. 동료직원을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비조작훈련, 체력단련 훈련, 도상훈련, 합동훈련, 지리조사, 수리조사. 실은 일과표에 따른 일정도 다 수용하기 벅찬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치단체에서 내려오는 업무도 만만치 않다.

소방은 제복공무원 중에 유일하게 지방직이다. 세월호나 2012년 구미 불산 누출사고 때 재난컨트롤타워로부터의 일사불란한 지휘 명령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불산 누출과 유사한 사고는 점점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자연재난마저 예측하기 힘들만큼 강력해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긴급구조통제단 가동훈련을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별로 적용하지 못한다. 지방직인 소방관이 국가직인 군·경찰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쟁, 범죄는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지만, 점점 대형화되고 복잡해 가는 재난은 지방에서 다루어야 하는 지방사무란다.

‘소방기본법’에는 대한민국 4000 여개의 법령 중에서도 유일하게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부족해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부분은 표가 난다. 화재의 특성상 초기에 불길을 잡아야 하는데도 출동인원 두 세 명, 성실히 장비 점검을 해 두어도 현장에서 끊어져 버린 고가차의 와이어는 소방관뿐만 아니라 시민의 생명까지도 담보해야 할 상황이 되고 훈련횟수에 버금가는 현장출동으로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아는데도 통합지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서 현장을 지켜만 봐야 한다.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 20초를 넘기지 않고 차고를 출발하지만 부족한 소방력 때문에 마을을 한바퀴 돌아 의용소방대원을 태우고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 ‘열심히’ 보다 ‘잘~’ 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소방관 국가직이 꼭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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